•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15년 버틴 '선박왕' 결국 백기…떨고있는 제2의 체납왕들

등록 2026.10.09 08:00:00수정 2026.10.09 08:38:43

권혁 시도그룹 회장, 체납 세금 3938억원 완납 의사 밝혀

과세당국간 징수공조 확대 주효…해외 재산 압류에 부담

아직 사업 규모 크고 확장 의사도…국세청, 국내 복귀 권유

국세청, 해외 은닉재산 추적 강화…백기투항 이어질수도

권혁 시도그룹 회장 *재판매 및 DB 금지

권혁 시도그룹 회장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 안호균 기자 = 역대 최고액 체납자인 권혁(76) 시도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4000억원에 달하는 세금과 추징금을 내지 않은채 10년 이상 법정 다툼을 벌여왔지만 국세청이 해외 재산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오자 결국 체납액 전액을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국세청은 제2, 제3의 '체납왕'들에 대해서도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고액 체납자의 해외 은닉 재산에 대한 추적과 추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 납세 당국과 징수 공조의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는 중이다.
 
8일 국세청에 따르면 권 회장은 개인 체납액 3938억원을 완납하겠다는 의사를 과세 당국에 전달하고 납부 계획을 제출했다. 지난 7월에는 현금 1000억원을 우선 납부했다. 국세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체납세금 납부 기록이다.

국세청은 지난 2011년 역외탈세 혐의로 권 회장과 관련 법인에 4100억원 대의 세금과 추징금을 부과했다. 권 회장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해외 거주자로 위장해 수입을 빼돌려 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권 회장은 자신이 한국 거주자가 아니어서 종합소득세를 낼 이유가 없다며 10년 넘게 조세 불복 소송을 이어왔다.

대법원은 지난 2024년 판결에서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면서 권 회장에 대한 체납액 3938억원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권 회장은 지난해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에 첫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권 회장의 체납세금에 대한 2차 납세 의무를 지게된 법인 3곳의 체납지정액까지 포함하면 전체 체납액 규모는 8000억원에 근접했다.

15년간 체납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텨왔던 권 회장이 결국 백기를 든건 해외 재산에 대한 과세 당국의 끈질긴 추적 때문이었다. 권 회장은 국내에 재산을 보유하지 않아 체납액 징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국세청은 올해 고액체납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체납자의 해외은닉재산에 대한 추적 활동의 강도를 높였다.

특히 세정 외교를 통해 해외 과세당국과 공동 대응에 나선게 결정적이었다. 국세청은 지난해부터 호주, 인도네시아, 헝가리, 벨기에, 영국, 라이베리아, 뉴질랜드 등과 징수 공조 실무협약(MOU)를 체결하며 국제 공조 네트워크를 빠르게 확대해 왔다. 이에 따라 징수 공조가 가능한 국가는 77개로 늘었다.

또 임광현 국세청장은 권 회장이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편의치적국(선박 소유주가 자신의 국적과 다른 선박을 등록할 수 있는 나라)을 직접 공략했다. 라이베리아와 파나마 국세청장에게 친전을 보내고 한국으로 초청했다. 라이베리아 국세청장을 만났을 때는 못 먹는 술까지 마셔가며 설득에 나섰다.

임 청장은 전날 MBC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그쪽 국세청장들께 '조세정의 차원에서 체납을 정리하는건 과세 당국의 의무 아니냐' 이렇게 협조를 당부드렸다"며 "(해외에 있는) 재산, 선박 소유 현황에 대해 파악해 압류하려고 했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권 회장에게) 부담이 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결국 권 회장은 마음을 돌려 경제 활동을 통해 체납 세금을 완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000억원은 현금으로 우선 납부했고, 담보로 선박 5척도 제공했다.

임 청장은 권 회장에게 체납액을 모두 납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할 것을 권유했다. 권 회장도 국내 복귀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충선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권 회장) 본인이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하고 싶고, 또 선박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장보고'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권 회장은 2011년 역외탈세 스캔들에 연루되기 전까지는 '선박왕'으로 불릴 정도로 해운 업계에서 성공 신화를 써온 인물이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며 직장인 생활을 하다 1990년께 해운업에 뛰어들었다. 시도해운이라는 작은 회사로 시작해 일본과 홍콩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전성기 때는 250척에 달하는 선대를 보유하고 연간 수조원 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회장은 현재도 상당한 규모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해운업체들과 비교해도 최상위권의 규모다. 국내 1위 해운업체인 HMM이 보유한 선박수가 약 150척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세청은 권 회장이 체납 세금을 모두 내고 국내로 복귀해 사업 활동을 이어가는게 국가와 개인에게 모두 바람직한 결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아직 확고한 국내 복귀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세자가 어떤 날은 다 정리하고 국내로 들어와야겠다고 하다가도, 편의치적국이 기업 활동을 하기에 금융이나 규제 등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보니 심경의 변화가 계속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권 회장이 사업을 더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제도권에 들어와서 국내 경제에 기여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권 회장의 이번 체납세금 납부는 향후 제2, 제3의 '체납왕'들의 백기 투항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고액 체납자들은 해외 여러 나라에 재산을 은닉해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도 체납자 또는 체납법인 대표자가 외국인이거나 주된 사업 활동 영역이 중국, 홍콩, 일본 등 해외인 경우가 적지 않다.

국세청이 외국 당국과 과세정보 교환, 징수 공조 협력을 확대해 가면서 체납자들의 해외 은닉 재산에 대한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는 상황이다. 점차 성과도 도출되고 있다. 이번 사례 외에도 국세청은 임광현 청장 부임 후인 지난해 7월부터 9개월 간 3개국 과세 당국과의 징수 공조를 통해 339억원에 달하는 체납 세금을 환수했다.

해외에 거주하며 국내에 재산 없다고 버티던 외국인 자산가는 징수공조에 부담 느껴 본국 소재 재산을 처분해 체납액을 자진 납부했다. 국내 리그에서 활동하다 세금을 신고하지 않고 출국한 외국인 스포츠 선수도 징수 공조가 개시되자 자발적으로 체납 세금을 냈다.

'재계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비정기 세무조사 부서와의 연계를 통해 체납 징수 활동의 실효성도 강화할 계획이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체납추적 연계 특별조사팀을 서울청 조사 4국 등 전(全) 지방청 비정기 조사국에 설치할 계획이다. 체납자 본인 뿐만 아니라 탈세 혐의가 있는 국내외 관련 법인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임 청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세청은 조세정의 구현을 위해 체납재산을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숨길 수 없도록 끝까지 추적하여 징수하겠다"며 "이번 사례가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고액 체납자들이 강제징수 전에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종=뉴시스] 배훈식 기자 = 임광현 국세청장이 7일 오전 세종시 세종정부청사에서 고액체납 특별대응 TF 활동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TF 활동을 통해 '선박왕'이라 불리는 권혁 시도그룹 회장의 체납액 3938억 원 전액 완납 받기로 했다. 2026.10.07. dahora83@newsis.com

[세종=뉴시스] 배훈식 기자 = 임광현 국세청장이 7일 오전 세종시 세종정부청사에서 고액체납 특별대응 TF 활동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TF 활동을 통해 '선박왕'이라 불리는 권혁 시도그룹 회장의 체납액 3938억 원 전액 완납 받기로 했다. 2026.10.07.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