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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켄드, '팝의 성소'를 축조하다…스타디움을 미래의 대성당으로

등록 2026.10.08 00:47:13

7일 고양종합운동장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8 위켄드' 현장 리뷰

약 2시간 동안 마흔 곡 몰아친 절창…'목소리라는 정교한 악기' 증명

8년 만에 내한공연 "내 생애 첫 스타디움은 한국"…2018년 고척돔서 첫 韓 공연

20년째 슈퍼콘서트…'누구나 오는 시대'에 입증한 안목의 정점

[서울=뉴시스] 위켄드. (사진 = Sebastien Nagy 제공) 2026.10.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위켄드. (사진 = Sebastien Nagy 제공) 2026.10.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고양=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너져 내리는 도시는 언제나 슬픔만을 환기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온전했던 것들이 가질 수 없었던 장엄한 질량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7일 오후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8 위켄드(The Weeknd)'는 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내면적 몰락과 구원을 거대한 물리적 공간으로 건축해 낸, 21세기 팝 음악계에서 가장 웅장한 제의(祭儀)였다.

일본 힙합 듀오 크리피 너츠(Creepy Nuts)가 뜨겁게 달군 그라운드 위로 어둠이 내리앉자, 침묵을 깬 것은 은빛 마스크를 쓴 아벨 테스파예(Abel Tesfaye·더 위켄드)였다. 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허리 업 투모로우(Hurry Up Tomorrow)' 수록곡 '뱁타이즈드 인 피어(Baptized in Fear)'와 '오픈 하츠(Open Hearts)'로 시작된 포문은 곧장 5만4000명 관객의 호흡을 앗아갔다.

빛으로 빚어낸 붕괴의 건축…무대 미술가 알렉산더 웨슬리와의 합작

이번 공연의 완성도를 규정한 결정적 축은 단연 무대 디자인의 공간적 미학이다. 2022년 출발해 대륙을 돌며 4년 간 완성형에 가깝게 변이해 온 '애프터 아워스 틸 던(After Hours Til Dawn)' 투어의 이 최신 버전은 스웨덴계 그리스인 무대 미술가 알렉산더 웨슬리(Alexander Wessely)의 손을 거쳐 4막의 거대한 파멸 서사로 승화했다.

앞서 영국 디자인 전문지 '월페이퍼(Wallpaper*)'와의 인터뷰에서 웨슬리가 밝혔듯, 이 무대는 "스크린이 이미지를 만들 때, 빛은 질량을 만든다"는 신념 아래 축조됐다. 실제로 거대한 LED 스크린과 물리적 세트의 경계는 지워져 어디서 현실이 끝나고 디지털의 환영이 시작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십자가 형태의 돌출 무대 중심에는 일본 현대미술가 소라야마 하지메가 빚어낸 12m 높이의 거대한 은빛 로봇 조각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웨슬리가 "기계를 신으로 착각한 문명의 유물"이라 칭했던 이 피조물은 천천히 회전하며 다채로운 빛을 뿜어냈고, 흰 로브를 입은 댄서들의 느린 군무와 어우러져 스타디움을 거대한 '발굴된 미래의 대성당'으로 변모시켰다.

화려한 신격화로 출발해 결함을 겪고, 결국 단 한 명의 취약한 인간으로 수렴되는 아벨의 서사는 이 세트의 붕괴 과정과 정확히 동기화됐다.

2시간 남짓 40곡의 파동…목소리라는 정교한 악기

[서울=뉴시스] 위켄드. (사진 = Hyghly Alleyne 제공) 2026.10.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위켄드. (사진 = Hyghly Alleyne 제공) 2026.10.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오프닝의 긴장감 속에서 '하트리스(Heartless)'를 부른 직후 마스크를 벗어던지자, 그가 10여 년간 구축해 온 퇴폐적이고 파괴적인 페르소나 이면의 다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2시간 남짓 동안 무려 마흔 곡을 쏟아부은 셋리스트의 호흡은 경이로웠다. '스타보이(Starboy)'와 '하우 두 아이 메이크 유 러브 미?(How Do I Make You Love Me?)', 그리고 브라질리언 펑크 사운드가 가미된 하우스 트랙 '상파울루(São Paulo)'에서 솟구친 불기둥은 스탠드석까지 열기를 전했다.

2018년 첫 내한 당시 '목소리를 하나의 정교한 악기처럼 운용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가창력은 8년의 세월 동안 한층 더 단단해지고 억세어졌다. '아이 필 잇 커밍(I Feel It Coming)', '다이 포 유(Die for You)'의 감미로운 팔세토는 물론, PB R&B의 본령을 보여준 '위키드 게임스(Wicked Games)'와 '콜 아웃 마이 네임(Call Out My Name)'에 이르기까지 음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절창을 들려줬다.

스타디움 전체를 수놓은 관객들의 손목 밴드가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가운데 울려 퍼진 '블라인딩 라이츠(Blinding Lights)'와 '레스 댄 제로(Less Than Zero)'는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거대한 낭만적 황홀경을 만들어냈다.

"내 생애 첫 스타디움은 한국"…특별한 교감과 남겨진 여백

공연 중반, 마이크를 쥔 그는 한국 관객을 향해 남다른 애정을 쏟아냈다. "제 평생 최초의 스타디움 공연은 한국(고척돔)이었습니다. 2018년에 제가 처음으로 혼자 스타디움 공연을 했을 때 여러분이 매진시켜 주셨죠. 한국은 아시아에서 제게 너무나 큰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이어 그는 "오늘 밤 이곳을 제대로 뒤집어 놓으셔야 합니다. 내일보다 오늘 밤이 더 최고여야만 합니다"라며 객석을 독려했다. "내가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당신도 날 그만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요. 우리가 결코 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 말이죠"라는 고백은, 무대 위 방탕한 나르시시즘과 결핍 사이에서 부단히 진실을 갈구해 온 한 인간의 속내를 엿보게 했다. 손하트를 날리는 그의 모습은 음악의 음울한 심연과 대비되며 묘한 인간적 온기를 남겼다. 위켄드는 공연 막바지에 한국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남겼다.

몇 가지 짙은 여백도 남았다. 2018년 첫 내한 당시 객석에서 그를 지켜봤던 블랙핑크 제니가 참여한 곡 '원 오브 더 걸스(One of the Girls)'가 연주될 때 일부 팬들이 기대했던 그녀의 깜짝 등판은 성사되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슈퍼콘서트 28 위켄드. (사진 = 현대카드 제공) 2026.10.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슈퍼콘서트 28 위켄드. (사진 = 현대카드 제공) 2026.10.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또한 지난달 일본 사이타마 베루나 돔 공연에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제가를 샘플링해 원곡 가수 다카하시 요코와 선보였던 화제의 신곡 '도쿄(Tokyo)' 무대 역시 세트리스트에서 제외돼 국내 서브컬처 팬들에게는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현장의 열기는 국경을 초월했다. 이날 객석에는 그룹 'NCT 127'의 쟈니와 재현, '라이즈' 멤버들을 비롯해 일본 기타리스트 미야비, 태국 배우 브라이트 와치라윗 등 국내외 스타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내며 글로벌 팝 아이콘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년, '정점'의 존재 이유

앙코르로 울려 퍼진 초기 명곡 '하우스 오브 벌룬스(House of Balloons)'에 이어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 속 '모스 투 어 플레임(Moth to a Flame)'이 잦아들 때, 무대는 비로소 완전한 폐허가 됐다. 남겨진 것은 재와 잔향뿐이었으나, 관객의 가슴속에는 거대한 예술적 실체감이 가득 찼다.

지난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지금은 슈퍼콘서트가 없어도 해외 아티스트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을 찾는 시대에, 굳이 내가 왜 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며 슈퍼콘서트 브랜드의 당위성을 자문한 바 있다.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명징한 응답이 바로 이날 밤 고양에 있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시대에, 현대카드의 문화적 안목이 무엇인지를 위켄드는 제 몸을 던져 입증했다. 위켄드의 첫 내한이자 첫 스타디움 공연 역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8'이었다.

2007년 비욘세로 출발해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그간 44팀의 첫 내한을 성사시키고 그래미 어워즈 통산 328회 수상자들을 불러들이며 누적 관객 73만5000명(이번 위켄드 양일 10만8000명 포함)이라는 궤적을 그렸다. 특히 위켄드는 상업적 흥행을 넘어 한 예술가가 통과해 온 10여 년의 심연과 파멸의 건축을 이토록 정교한 스펙터클로 치환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위켄드는 8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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