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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꽃도 안 그렸다”…안창홍이 평생 분노를 그리는 이유[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6.11.03 16:02:27수정 2026.11.03 18:09:49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개인전 ‘지상낙원’ 4일 개막

버려진 동물 박제에 눈물·노란 나비 그려 넣어

“돈 되는 맨드라미도 그만뒀다”…분노를 멈추지 않는 화가

무쇠 조각·은판사진 활용 회화 등 39점 공개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아라리오갤러시 서울에 선보인 안창홍 '눈물'.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아라리오갤러시 서울에 선보인 안창홍 '눈물'.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죽은 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미 생명을 잃은 박제된 새에게는 없던 눈물이다. 화가 안창홍(73)이 그려 넣었다.

날개를 펼치지 못한 새의 몸에는 검은 그물망이 드리워져 있다. 주변에는 작은 노란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죽은 생명에게 보내는 애도의 표시다.

“한 번 죽임을 당하고 박제 껍질 속에서 영원히 못 떠나고 있는 거지.”

3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만난 안창홍은 버려진 동물 박제들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몇 년 전 경기 여주의 한 폐공장에서 발견한 동물 박제들은 목이 부러지고 눈이 빠진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인간의 욕망에 희생된 뒤 전시물로 쓰이다가 쓸모가 없어지자 버려진 생명들이었다.

그는 몇 달 동안 박제들을 촬영했다. 참혹한 모습을 기록하는 동안 몸이 아플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박제’ 연작이다. 사진으로 기록한 동물들의 모습 위에 물감을 더했다. 죽은 눈에는 눈물을, 주변에는 노란 나비를 그려 넣었다.

그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권력에 희생된 인간의 고통을 그려왔는데, 이번에는 죽은 동물들을 애도하고 있다. 작업이 분노에서 애도로 변화한 것인가.

“분노 속에는 애도가 있는 거거든요. 애도 없이는 분노할 이유가 없잖아.”

그에게 분노와 애도는 대립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희생된 존재를 향한 애도가 세상을 향한 분노의 동기였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창홍 작가가 3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박제된 새의 눈물과 노란 나비에 담긴 애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2026.11.03.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창홍 작가가 3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박제된 새의 눈물과 노란 나비에 담긴 애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2026.11.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권력에 희생된 인간에서 인간에게 희생된 동물까지

안창홍 개인전 ‘지상낙원’이 4일부터 12월 26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회화 38점과 조각 1점 등 39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역설적이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폭력과 야만, 소외된 존재들의 고통이 숨어 있다는 의미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이 약 3m, 무게 1.1t의 거대한 무쇠 두상이 관객을 맞는다. 신작 조각 ‘눈먼 자들 – 전쟁’(2026)이다.

거대한 얼굴을 포탄이 사선으로 관통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폭력에 짓밟힌 인간의 얼굴만 남았다.

안창홍이 무쇠로 만든 조각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쇠 자체가 무기도 만들고 전쟁과도 관계돼 있잖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무쇠를 선택한 이유다. 재료 자체에 폭력의 역사를 담으려 했다는 설명이다.

벽에는 희뿌연 얼굴과 손이 검은 화면 속에서 떠오른다.
〈지상낙원 – 손'1〉 Paradise – Hand'1 2026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릭 162 x 128.5 cm 다게레오타이피스트: 박성일 *재판매 및 DB 금지

〈지상낙원 – 손'1〉 Paradise – Hand'1 2026 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릭 162 x 128.5 cm  다게레오타이피스트: 박성일
 *재판매 및 DB 금지



‘지상낙원 – 얼굴’과 ‘지상낙원 – 손’ 연작은 19세기 은판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 기법을 활용한 신작이다. 작가가 1970년대 제작한 부조 작품 등을 은판에 촬영한 뒤 대형 캔버스로 확대하고 물감을 더했다. 사진 작업에는 박성일이 참여했다.

오래전 만든 얼굴들이 반세기 만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그 얼굴들은 제주4·3과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이름 없이 희생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나 현재나 폭력의 유산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고, 더 잔인해지고 있어요. 예술가들이 이런 것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3층에는 인간에게 희생된 동물들이 기다린다. 버려진 박제들의 몸은 훼손됐고,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4층에는 ‘이름도 없는’과 ‘얼굴’ 연작이 전시된다. 작은 캔버스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얼굴’ 연작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시멘트를 부어 굳힌 뒤 다시 캐내는 방식으로 만든 부조에서 출발했다.

안창홍은 이 과정을 땅에 묻힌 역사를 발굴하는 일에 비유했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안창홍 개인전 ‘지상낙원’ 전경. 높이 약 3m, 무게 1.1t의 무쇠 조각 ‘눈먼 자들 – 전쟁’(2026)이 전시장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안창홍 개인전 ‘지상낙원’ 전경. 높이 약 3m, 무게 1.1t의 무쇠 조각 ‘눈먼 자들 – 전쟁’(2026)이 전시장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꽃 그리는 화가 될까 봐 아예 붓을 놓았다”

안창홍은 평생 사회의 폭력과 인간의 고통을 그려왔다. 그렇다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릴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맨드라미다.

그는 한때 맨드라미를 그렸다. 꽃이라고 해서 아름답고 화사한 그림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시기, 그 슬픔과 고통까지 꽃에 녹여냈다고 했다.

그런데 작품이 거의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문도 쏟아졌다.

“친구들도 ‘안창홍도 별수 없구나. 결국 꽃 그리네’라고 생각했지.”

그는 웃으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정작 작품이 잘 팔리자 맨드라미를 그리지 않기로 했다.

“꽃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 싶었어. 돈의 유혹은 뿌리칠 수가 없거든. 그래서 아예 유혹의 빌미를 안 만들었지.”

한 해에 20~30점씩 주문이 들어왔지만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돈의 유혹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자 오히려 담담하게 답했다.

“난 유혹이라고 생각 안 해. 안 그리는 거지 뭐.”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잘 팔리는 그림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거지.”

그는 벽에 걸려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보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다고. 벽에 걸려서 사람 마음을 그냥 즐겁게 해주는 것보다도, 더 다른 세상을 향해서 외치고 싶은 분노가 있었기 때문에.”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창홍 작가가 3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초기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 기법을 회화에 처음 접목한 신작 ‘지상낙원 – 얼굴’(2026)과 ‘지상낙원 – 손’(2026) 연작을 설명하고 있다. 2026.11.03.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창홍 작가가 3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초기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 기법을 회화에 처음 접목한 신작 ‘지상낙원 – 얼굴’(2026)과 ‘지상낙원 – 손’(2026) 연작을 설명하고 있다. 2026.11.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구멍 난 양말 신고 결혼 승낙받으러 간 화가

안창홍은 195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술대학에는 진학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집에서 독립해 스스로 생계를 꾸렸다고 했다.

그림을 배우고 싶었지만 화실에 낼 돈이 없었다. 무작정 찾아간 화실에서 만난 스승은 부산 화단의 원로 송혜수(1913~2005)였다. 일본 도쿄 데이코쿠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송혜수는 이중섭보다 세 살 많은 같은 세대의 일본 유학파 화가였다.

“그 선생님한테 화가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지. 프라이드를 배웠지.”

안창홍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입시미술 화실을 운영하며 상당한 돈을 벌었다. 그러나 제도권 교육을 거부했던 자신이 대학 입시를 위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결국 화실 문을 닫았다. 서울 화곡동을 거쳐 경기 양평의 외진 곳으로 들어가 37년째 거주하며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고생은 두렵지 않아.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그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며 웃기도 했다.

28세에 결혼한 아내는 자신이 다니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던 학생이었다고 했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찾아간 처가는 넓은 잔디밭이 있는 부유한 집이었다.

훗날 처제에게 들으니 그때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왔던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도 안 쫄았어요?

“뭘 쫄아. 왜 쫄아.”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청년은 지금도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한 집의 가장이 불행하면 모든 식구가 불행해진다고 생각해요. 돈을 많이 벌어도 내가 불행하면 그 불행이 가족에게 전해지잖아요. 돈을 못 벌어도 의미 있고 뜻이 있어서 살면 난 그게 행복하거든.”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안창홍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안창홍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예술가는 시대의 증언자…보고도 외면할 것인가”

안창홍에게 물었다. 거대한 자본과 폭력, 야만 앞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라고 했다.

“예술가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심미주의자를 넘어 시대의 공기 속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포착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사회적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더 간결했다.

“나는 시대의 증언자라고 생각해, 예술가는.”

그가 소외된 인간의 얼굴과 박제된 동물의 눈물을 끊임없이 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창홍은 ‘보는 행위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는 현실을 작품으로 드러내 관객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걸 보고도 외면할 것인가."

죽은 동물의 눈에 그려 넣은 눈물은 그렇게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질문이 된다.
눈물 2024'13 noon-mool 2024'13, 2024, Acrylic on photo panel, 130 x 127 cm. Photographer PARK Seoungil *재판매 및 DB 금지

눈물 2024'13 noon-mool 2024'13, 2024, Acrylic on photo panel, 130 x 127 cm. Photographer PARK Seoungil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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