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디파 우승' 백구영, 마라톤을 말할 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등록 2026.10.28 08:00:00
'스트릿 월드 파이터 : 디렉터스 워' 최종 우승
몸이라는 정직한 악기로 완주한 30년 춤의 궤적
"도망치지 않은 시간에 바친 '개근상'"
"한 코스를 끝냈을 뿐, 마라톤은 계속된다"
![[서울=뉴시스] 백구영. (사진 = 엠넷 제공) 2026.10.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7/NISI20261027_0002275564_web.jpg?rnd=20261027183558)
[서울=뉴시스] 백구영. (사진 = 엠넷 제공) 2026.10.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몸이라는 가장 정직하고도 잔혹한 악기를 다루는 댄서의 운명 역시 이 비정한 레이스와 닮아 있다.
지난 20일 종영한 엠넷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월드 파이터 : 디렉터스 워'(이하 '스디파')의 마지막 무대. 24년 차 안무가 백구영(41)이 꺼내 든 화두는 역설적이게도 '마라톤'이었다. 트랙 위에 홀로 남겨진 러너처럼 고독하게 자신을 소진해야 하는 춤의 길. 그러나 그가 토해낸 군무의 끝에 남은 것은 고독의 과시가 아닌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연대의 온기였다.
심사위원 만장일치급 찬사와 시청자 투표 1위를 싹쓸이하며 '스디파' 최종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백구영을 27일 서울 상암동 CJ ENM에서 만났다. 1위로 호명되던 순간 무대에 주저앉아 쏟아냈던 눈물의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30년 만에 품에 안은 '개근상'…"내 안의 구멍이 메워졌다"
"24년간 프로로 일하면서 제 이름 석 자로 된 트로피가 단 하나도 없었어요. 미디어에서는 '20년간 업계 톱'이라 불러주셨지만, 사실 대중이 저를 알아봐 주신 시간은 제 춤 인생의 반의반도 되지 않거든요. 늘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뚫려 있는 채로 춤을 춰왔습니다."
우승 직후 그가 남긴 "춤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받는 개근상 같다"는 소회는, 천재성이나 유행의 첨단에 기댄 승리가 아닌 '도망치지 않고 견뎌낸 시간'에 바치는 헌사였다.
![[서울=뉴시스] 엠넷 '스트릿 월드 파이터 디렉터스 워' 백구영. (사진 = 엠넷 제공) 2026.10.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1/NISI20261021_0002269387_web.jpg?rnd=20261021102254)
[서울=뉴시스] 엠넷 '스트릿 월드 파이터 디렉터스 워' 백구영. (사진 = 엠넷 제공) 2026.10.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가 슬럼프를 건너온 방식은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유명한 어록인 "그냥 하는 거지"와 맞닿아 있다. 술과 담배를 일절 입에 대지 않은 채, 컨디션이 바닥을 치고 기분이 가라앉아도 연습실 바닥을 닦으며 몸을 움직였다. 재능이 번뜩이던 선배들이 세월 앞에 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오직 '노력이라는 집요한 반복'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이 체득했다.
멍과 독을 뚫고 도달한 서사…'스맨파'의 한을 씻다
"당시 파이널에 진출한 동료들의 무대를 객석에서 방청하는데 마음이 무척 쓰리고 힘들었습니다. '나도 저 무대 한가운데 서서 내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갈증이 가슴 깊이 박혔죠."
K-팝 산업의 디렉터는 언제나 대중과 팬덤, 아티스트라는 뚜렷한 타깃의 욕망을 대리 배설하는 존재다. 그는 "이번에는 욕을 먹더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온전한 내 작품을 쏟아붓겠다"는 일념으로 '스디파'에 뛰어들었다.
여정은 매 순간 치열했다. 첫 미션에서 오랜 동료이자 후배인 캐스퍼와의 1:1 시그니처 쟁탈전(태민 '길티(Guilty)' 재해석)을 9:0 완승으로 이끌며 기선을 제압했고, 타이틀 시퀀스 '로열티(Royalty)' 미션에서는 안무가 각자의 개성을 포용하는 연출로 메인 디렉터 자리를 거머쥐었다. 댄서 바다와 '구와바' 팀을 이뤄 NCT 태용의 신곡 '와카 왁(Wacka Wak)' 포인트 안무('딱밤춤')를 탄생시키며 순항하던 그에게도 절체절명의 위기는 찾아왔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안무가 백구영이 18일 서울 강남구 엘리에나 호텔에서 열린 Mnet '스트릿 월드 파이터 : 디렉터스 워'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18. jini@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18/NISI20260818_0021402109_web.jpg?rnd=20260818105524)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안무가 백구영이 18일 서울 강남구 엘리에나 호텔에서 열린 Mnet '스트릿 월드 파이터 : 디렉터스 워'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8.18. [email protected]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위험한 안무 탓에 세게 떨어져 타박상을 입었지만, 제작진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제가 자초한 고통이었고, 저를 받쳐주는 댄서들의 헌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상처와 멍을 딛고 끝내 독기를 품고 일어서는 서사를 무대에 쏟아부었습니다."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에 새겨진 통증을 예술로 치환해 낸 이 무대는 심사위원단의 극찬을 이끌어내며 그를 마침내 파이널로 이끌었다.
"저물어간다는 불안 속, 아직 떠 있는 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에게도 시간의 무게는 서늘하게 다가왔다. 최근 2~3년간 그는 깊은 자신감의 하락을 겪었다.
"업계 모두가 나만 찾던 찬란한 시절이 지나고, 어린 후배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걸 보면서 '어? 나도 이제 슬슬 저물어가는 건가' 싶은 두려움이 엄습했어요. 시안을 내도 채택되지 않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스디파' 섭외가 왔을 때도 '최근 내 발걸음이 이렇게 저조한데 나가도 되나' 망설였죠."
![[서울=뉴시스] 백구영. (사진 = 엠넷 제공) 2026.10.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27/NISI20261027_0002275565_web.jpg?rnd=20261027183615)
[서울=뉴시스] 백구영. (사진 = 엠넷 제공) 2026.10.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어릴 적 대단했던 선배님들이 점차 저물어가는 걸 많이 보는데, 형만큼은 저물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떠 있어 줘서 너무 든든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울컥했고,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42.195㎞의 끝에서, 다음 레이스를 준비하며
"나이가 들면서 몸의 반응 속도가 예전과 달라지는 걸 느낄 때면 슬프기도 합니다. '10년만 젊었어도 덜 아팠을 텐데' 싶죠. 하지만 춤출 때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늙어가는 육체 안에서도 현역 댄서로서의 감각을 단련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백구영은 우승 특전으로 주어지는 엠넷 글로벌 시상식 '2026 마마 어워즈(MAMA AWARDS)'의 오프닝 무대 총괄 연출을 준비 중이다. 제작 지원금 1000만 원은 경연 내내 피땀을 나눈 댄서들과 스태프들의 회식비로 상당히 쓸 계획이다. 오는 11월21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을 시작으로 광주, 부산, 대전, 대구로 이어지는 전국투어 콘서트도 앞두고 있다.
백구영은 마라톤 42.195㎞ 코스 중에서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담담하게 답했다.
"이번 '스디파'를 통해 제 인생의 한 코스는 완전히 완주했습니다. 하지만 마라톤 선수가 평생 한 번만 달리고 멈추진 않잖아요. 박수를 받으며 결승선을 통과했으니, 이제 또 다른 마라톤을 달릴 수 있도록 다시 몸을 풀고 준비해야죠. 거창한 야망 대신, 눈앞에 놓인 다음 무대를 향해 매 순간 성실하게 발을 딛는 것. 그것이 제가 아는 유일한 완주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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